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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 악에 뿌리라는 돈을 사랑하는 오산리기도원을 위해 간절히..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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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산리기도원은 종교시설인가?

나는 2급 장애인으로 오른쪽 팔을 전혀 쓰질 못하며, 24시간
통증으로 다량의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런대 6월13일 선거날로 공휴일을 맞이하여 오랫만에 기도원을
찿았다.

난 오래전에 기도원 밑에 마을인 오리골에 다년간 거주하여
많은 마을사람들을 알고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을 사람들을 피하며 기도원에 올라가려 했으나,
구파발에서 탄 버스에서 부터 마을 어른을 만나고 말았다.

아무튼 기도원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서 도착한 기도원은 예전에
입구에서 발급하던 출입증은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대로 대성전으로 들어갔고 얼마후 "든든한 교회"를 담임하는
장양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6시경 즈음에 팔각정에서 등록절차를 물어보았다.
관리 집사님은 "사랑의집"에서 등록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다.

난 "사랑의 집"에 들어가 "선교센터"에서 잠을 자겠다고 밝혔고,
안내 집사님은 "하루에 1만원" 이라고 알려 주셨다.

의외로 비싼 가격이었으나 일단 1박만 하기로하고 선교쎈터에
짐을 풀었다.

그런대 내가 지정받은 209호는 침대가 총 12개 였다.
그러나 비어있는 침대는 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측 2층에 남은 단 1개의 침대가 유일했다.

난 저녁 식사 후 3부에도 "든든한 교회"에 장양희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예배 후 대성전 출입문을 나서려는 순간, 실로 몇 년만에
기도원 입구 마을에 사는 박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우리는 빔 늦도록 대화를 나누었고,
저녁 11시가 넘어서 난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초저녁에 선교센터로 짐을 옮길 때 "저녁12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이미 관리 집사님에게 들은 상태였다.

그리고 209호로 들어가서 부스럭거리자, 출입구에 자리잡고 있던
젊은 형제가 중앙의 불을 켜 주었기에 사다리는 충분히 보이는
상태였다.

그런대 사다리가 침대에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을 몰랐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사다리가 침대에 바짝 붙어 있으면 2층으로 올라가는
최소한의 각도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재
스마트폰에 여러장의 사진으로 담아논 상태다.

이 상황에서 2~3개의 계단을 올라갔으나 각도를 이기지
못한 나는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또 떨어지면서 한쪽팔 밖에 없는 나는 왼손으로 사다리를 잡았다.
그러나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는지 안닿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고 계단을 잡는 순간, 왼쪽팔에 엄청난
통증은 마치 근육이 찟어지는 것 같았다.

난 계단 밑에서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사다리에 각도는 사람이 올라가려면, 사다리 밑부분이 침대와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벌려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계단의 각도를 확보하기 위해 사다리를 최대한 넓게 벌렸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려 했으나,
왼쪽 팔의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침대 위에 누워있던 성도님 2분이 나를 2층까지 올라가도록
엉덩이 부분을 밑에서 밀어 올려 주셨다.

그러나 팔을 전혀 못쓰는 상황인지라 난 겨우
위태위태하게 올라 갈수 있었다.

난 성도님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니 팔에 고통은 극심하다.

나는 원래부터 24시간 통증으로 고대안암병원 퉁증학과에서
몇년간 마약성및 여러가지 진통제를 혼합 복용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예전에 담당교수는 "이렇게 약을 강하게 복용하면 죽을 수도
있다" 는 경고도 했었다.

그러나 통증은 죽음보다 참기 힘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력한 진통제는 기도원에 올 때도 챙겨와서 복용한 상태였다.

이처럼 진통제를 복용한 상태였으나 멀쩡한 왼쪽 팔에 고통이 극심했기에
나는 내심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혹시 근육이 파열 됐나? 아니면 인대가 늘어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날 까지 왼쪽팔은 근육이나 인대에 이상은 없었는데..

그렇게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통증으로 몇번씩
깨어나곤 했다.

이렇게 아침을 맞이 했는데 통증이 약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래서 팔에 서서히 힘을 주다보니 갑자기 "찌릿"하는강렬한 통증이
깜짝 놀라게 밀려왔다.

큰일이다!
아무튼 그래도 통증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대 누군가 아침 9시면 다음날의 침대를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난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을 하다가 일단 병원에는 가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팔각정을 찿아가서 사정을 털어 놓자, 간호복을 입은
여자분이 나타났다.

그 분에게 난 목과 어깨와 팔, 허리등의 통증을 설명하며 병원 얘기를 했다.
그런대 그 분은 쌩뚱맞게 119를 불러왔다.

난 걸을 수는 있는 상황이므로 "기도원에는 차가 없느냐?"
고 묻자 여자 분은 "없다"고 대답을 한다.

할수 없이 119를 타고 조금 움직였을 때 "이제 이후에 기도원과
연락은 누구와 해야 하는냐?고 소방관에게 묻자 "모른다"는 답변이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다시 팔각정으로 가서 119차에서 내렸다.

왜냐면 사람이 다쳤는데 기도원 직원 중 아무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원시설을 사용하다 사람이 다쳤는데, 어떤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성전 밑에 있는 행정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대 진짜 황당한 것은 이제 부터였다.

그 곳에 들어가자 나중 알고보니 "오ㅈ수 대리"라는 분으로 밝혀진
키와 덩치가 꽤나 큰 분이 등장했다.

그 분은 꽤나 거만한 눈초리로 판검사처럼 먼저 내 이름과
생년 월 일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묻는대로 답변을 하자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아마 내 신상정보를 알아 보는 것 같았다.

한 순간 울컥 하는 것이 내 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분명 기도원의 시설 관리 문제로 사람이 다쳤으면 먼저 얼마나
아프셨냐? 라는 위로의 말이나 병원 후송이 최우선 아닌가?

하지만 이건 완전히 사건을 취조하는 형사같은 태도다.

특히그 다음 말이 내비위를 틀어지게 만든다.

우선 먼저 "내 잘잘못을 따져 보아야 한다"며 한술 더떠 "기도원에
시설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왜 11시가 넘어서 침실에 들어 갔느냐? 묻는다.

그래서 "12시에 문을 닫는다는 말을 선교센터에서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답변을 했다.

덧 붙여 "대성전에서 현재 아랫 마을 기도원입구에 사는 형제를
오랫만에 만나서 대화가 늦었다"는 설명도 했다.

그러자 "10시에 문을 닫을 텐데?"라며 우물 거린다.

그리고 이번엔 "증인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런!!

그래도 참고 "방 안에 사람들이 모두 보았고 2명은 직접 나를
침대 위까지 올라가게 해 주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몸도 불편하면서 왜 하필이면 2층 침대를 썼냐?"고 묻는다.

슬슬 화가 났지만 "그 침대 밖에 없었다"라고 답을 했다.

사실 그침대는 몸이 성한 사람도 위험을 느낄 만큼 사다리의 각도가
좁아서 위험했다.

그러므로 "노약자나 장애인은 2층 사용을 불허한다"라거나,
"사다리에 안전 각도를 충분히 확보한 후에 사용하라"는 경고문
정도는 절대로 필요한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방안 모든 곳을 내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담았어도, 어느
한군데도 그런 글귀는 없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천장도 얕은 방에 2층 침대 구조를였다.
더 나아가 최대한 침대를 많이 설치하기 위해 침대 간에
간격도 너무 좁힌 상태였다.

물론 오르락내리락 할때에 사다리의 안전 각도 역시, 방이 좁은
관계로 충분히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마 개인적인 생각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좁은 2층 침대로
인해 신체 중 여러부위를 다쳤어도, 기도원에서 "쉬쉬"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순간 운동력이 떨어지는 여성들은 더더욱 많이 다쳤을
것이다"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처럼 뻣뻣하게 나오는 오ㅈ수 대리의 자세를 대할 때
난 절로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오ㅈ수 대리와 오산리기도원 직원들은 기도원의 미숙한 시설과
잘못됀 구조로 인하여 다친 성도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방문자들
잘못으로 몰면서 마음까지 아프게 했을까?

이들은 기도원 구조물에 다친 성도들의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는
행동에 매우 숙달됀 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은 기도원 직원들과 오ㅈ수 대리 등의 거만한 반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육적,심적인 고통을 안고 성도들이 기도원을 내려갔을까?.

참으로 방문자들에 억울함과 황당함에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기도원 근무자들에게서 풍겨나는 무관심과 불친절의 향기는, 이들에
신앙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리라!

특히 오ㅈ수 대리에게선 불친절을 뛰어넘어 거만과 뻔뻔한 압박의
향이 독하게 풍긴다.

또한 방문자에게 습관적으로 잘못을 뒤집어 씌웠을 것이 "안 봐도
비디오"처럼 선명해 보인다.

난 화가 나서 기도원 입구에 사는 박전도사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그 형제는 "몸이 성한 자신도 꽤나 위험해 보였다"고 말한다.

사실 12만원 짜리 호텔방을 가보아도, 기도원 12인용 침대방의
전체 크기보다 크다.

아니 1인당 5.000원을 받아서 방 하나에 총 6만원을 받는다 해도
마찬 가지다.

6만원짜리 모텔 방만 가보아도 현재 12인용 침실의 전체 크기보다
대부분 크고, 시설은 더더욱 비교가 안됀다.

특히나 얕고 좁은 방에 2층 침대로 구조를 만들었으니 "돈에 눈이
어두운 짓"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번에 기도원에 가보니, 가난한자들을 쫓아 내려는 듯,
성전에서는 아예 잠을 잘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현재 오산리기도원은 최소한 1만원짜리 방에서 자야한다.

날이 갈수록 기도원은 돈독이 올라 복음의 최소한에 정신조차
인식을 못하는 듯 싶다.

예수님이 선지자 요한에 제자들의 물음에 답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증거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였다.

즉 사두개인과 바리새인과 예수님과에 가장 뚜렷한
차이는 빈부를 따지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자들에게 값없이 복음이
전파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현대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과 같은 오산리기도원은
기도하려는 성도들에게 최소 1만원에 기본 숙박비를 내라고 강요 한다.

또 오래전부터 때때로 유명 목사들의 집회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받았다.
이런 행동은 강사들 스스로 삯군임을 광고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뿐인가?
대부분의 부흥회는 "축복받는 비결"로 아낌 없는 헌금을 강요하여,
2중 3중으로 돈을 갈취한다.

아마 그래서 삼박자 축복인지 모르겠다.

최소한 참가비를 받는 집회라면 추가로 헌금을 걷는 행동은 양심이
있다면 삼가해야 정상아닌가?

그러나 유명목사들의 집회일수록 돈을 밝히는 양상은 더욱
심한것이 한국기독교의 대세적 현상이다.

하루살이는 걸러먹고 낙타는 통째로 먹는 이들 거짓 삯군들은 "돈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하여 하나님을 빙자해 고액의 연봉은 물론
온갖 호화생활을 마다 않는다.

아울러 그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에게 돈을 투자하면
30배60배100배, 심지어 성경에는 10,000배가 넘는 법도 있다고
소리를 높인다.

결국 은연 중에 주님이 로또복권 보다 낮다는 인식까지 갖게 한다.

나 역시 1980년대에 그런 조용기목사의 설교를 듣고 내일 먹을
쌀값까지 헌금으로 바쳤던 기억이 난다.

돈계산이라면 누구보다 빨랐던 나는 최소가 30배라니, 헌금과 봉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단독으로 순복음신문을 들고 병원 전도도 다녔었다.

그런대 한 순간 내면에서 "전도하기에 앞서서 네 자신이 먼저 복음을
제대로 깨달아라!"는 음성을 듣고 단독병원전도를 멈추었다.

그리고 몇년 동안 순복음교회를 다니 던 중 사도바울의 헌신등과
고생, 또 구약의 선지자도 병으로 죽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결국 번영신학은 "복"을 하나님자리에 두고, 하나님은
내 복을 지키주는 "집사"같은 존재로 전락시키는 가르침이란 것을
깨달았다.

또 현재도 헌금을 많이 걷는 목사를 능력있는 목사로 여기니, 은연
중에 목사들은 헌금이 많이 걷히는 설교를 경쟁 하는 것 같다.

또한 부자 목사를 롤모델로 삼는 수많은 목사, 전도사와
신학생들은, 주의 뜻을 온전히 찿기는 커녕, 온갖 호화생활과 고액의
자동차와, 자신들 스스로가 집회 한번에 수백~수천만원을 받는
유명한 목사가 되기를 내심 목마른 사슴처럼 갈망하지 않는가?란
생각도 들었다.

한마디로 삯군 목자를 장래희망과 목표로 삼는 목회자들을 볼때,
한국교회의 앞날이 심히 어둡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목회자들을 꾸짖고 퇴출시켜야 할
평신도들이 삯군 목회자들을 감싸고 두둔하는 현상들이다.

어찌보면 한국교회는 목사,장로 평신도들까지 담임 목회자에
자질과 능력이상의 "교회부흥"이라는 허상을 쫓고 있다.

또한 "교회부흥"은 목회자들의 어떠한 잘못도 덮을 수 있는 면죄부요,
목회자들의 부와 명성을 보장해주는 "확증서"이기에, 거의 모든
목회자가 자신의 능력을 한참 초월하는 "교회부흥"을 추구한다.

실제로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목사만 보더라도 성경을 초월하는
이상한 성경해석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사기꾼 이재록을 10만이 넘는 한국성도? 아니
한국사람들이 "목자님"이라며 따랐다.

아울러 이재록은 그런 국내에 추종자들을 기반으로 해외선교까지
펼치며, 주님에 성호는 물론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의 명성에도
먹칠을 했다.

또 신천지는 어떤가?
엉터리 성경해석으로 기독교를 이 땅에서 없애버릴 때 주님이
오신다는 황당한 이론과, 교주 이만희의 영생설을 믿고 있다.

그러나 교주 이만희는 결국 죽을 것이다.

그러면 또 통일교처럼 2인자를 내세우며 슬쩍 교주의 영생설을
무시해도, 이미 이단의 독성에 취해버린 그들은 여전히 그 곳에
머무를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기만해도 속아 넘어 온다는 사실을 노리고 있는 듯 싶다.

더 나아가 자신들도 교주자리에 오르려고, 이만희가 거짓 목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충성을 하고 있으니, 마귀 색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대 왜 이토록 한국교회는 통일교 문선명, 박태선의 신앙촌,
이재록과 이만희까지 수많은 대형 이단들이 출몰할까?

한마디로 확실하게 성경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평신도가 하나 되어 교회의 외형만 키운 결과도 한몫 했으리라!

오늘도 장님 목회지와 장님 평신도가 연합한 "교회부흥"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제대로 모르는 외형만 교인인 성도? 라는 자들은
이단들이 출현하여 해괴한 이론을 펼치면, 맥없이 그들의 이론에
속아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오히려 진리를 파괴하는 편에 앞장 서서 날뛰고 다닌다.

이처럼 진리를 제대로 모르는 성도들은 쉽게 이단에 빠지는 것은
물론, 일상 생활 곳곳에서 진리에 속하지 않았음을 노출 시킨다.

그 결과 이런 성도?들은 일상생활에선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한
악한 행동들도 꺼리낌 없이 행한다.

오산리 기도원의 행정실에 자칭 오ㅈ수 대리 같은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 같다.

아울러 "왜 자칭이냐?"

우선 그는 내 신상정보는 철저히 알아가면서도 자신은 명함 한장을
건네지 않았다.

또 유사시를 대비하여 휴대폰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으나, 그는
절대로 알려 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오ㅈ수 대리인지 어떻게 믿느냐?고 묻자,
고개를 돌려 "자기 자리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제대로 됀 절차도 알려주지를 않고 진단서만
떼어오라며 말을 끝맺는다.

그래서 나는 "교회게시판에 당신의 행동을 글로 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전혀 신경도 안쓴다는 태도다.

화가 치민다!.
사람이 다쳤건만 이런 "갑질"이 없다.

6월18일 월요일 오후에 오산리 기도원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에는 전화 받는 사람이 없었는데 의외로 오ㅈ수 대리가 전화를 직접 받는다.

그래서 오ㅈ수 대리에게 "당신에 관해서 여의도순복음 장로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말을 해줬다.

그는 "잘했다"며 허세를 부리는 듯한 태로로 전화를 받는다.
그에 태도는 몇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시건방졌다.

내가 "CT를 2군데 찍었고 6월25일날 결과를 보러간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자기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보험금청구서"만 작성해 오라고 한다.
아니 현재 치료 중인데 무슨 보험금을 청구하라는 말인가?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불친절에, 괜한허세를 부리는 것이 몸에 베인 사람 같다.
혹시 기도원최고 경영자의 친인척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반드시 기도원에서 퇴출 시켜야 할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처음 다친 날 행정실로 들어갔을 때 였다.
무전기를 들고 있는 경비 집사인지? 아무튼 팔각정을 오고 가던
사람도 나를 꾸짖는다.

"왜 고분고분하게 대리의 물음에 답하지 않느냐?며 핀잔을 준다.

"고분고분?" 주객전도로 어이가 없고 할말을 잃게 만든다.
결국 쫓겨나다시피 행정실에서 밀려난 상황에 한순간 막막했다.

사실 10년 넘게 이 동네를 떠나 있어서 이 지역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금촌은 잘 나가지도 않았기에 더욱 병원도 잘 모른다.

더구나 원래 통증이 심한 이유로 자동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이 사고를 경찰에
신고해 자취는 남겨야 할 것 같았다.
112를 눌렀고 사건을 말하며 기도원으로 경찰을 불렀다.

잠시 후에 경찰차가 보이자 어느새 "오ㅈ수 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경찰차에서 내리는 경찰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아마 평소 안면이 있는 경찰관이 오대리와 통화를 하고 온것 같다.

그런 이유인지 경찰관들도 피해자인 내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경찰은 금존의 큰 병원에 까지만 나를 태워다 주기로
나와 합의를 보았다.

어떻게 기도원 측에서는 아프다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초보적인 조치도 취하지를 않을까?

과연 "복,복,복"만을 추구하고 가르치는 순복음교회 교인들답다.

아울러 저런 류의 인간들이 행정과에 앉아있는 오산리기도원은,
종교시설이긴 커녕, 일반 집단에서도 볼 수 없는 불친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나를 무작정 119를 불러 태워
보냈던, 맨 처음의 하얀 까운을 입었던 여자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기도원 곳곳에 퍼져있는 불진철과 무성의를 한눈에 체험할 수 있었다.

문든 식당 입구에 붙어있는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라는
커다란 썬팅글씨가 마치 날 조롱하듯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글자 밑에 마치 "거짓말이야" 라는 썬팅글씨가 써 있을 것 같다.


기도원은 어떤 곳인가?

아예 처음부터 개인이 돈을 투자해 만든 시설이라면, 불친절 하든,
막대한 이익을 남기든, 그들 맘대로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곳은 "최자실 기념기도원"이라는 명칭이 말하듯, 수 많은
사람들에 기도와 헌금으로 만들어진 종교시설 이다.

즉 맨땅이었던 오산리에 성도들의 기도와 땀과 헌금으로 오늘날에
오산리기도원이 탄생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기도원이 하루 1만원에 숙박비를 내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왜 성도들에 헌금으로 지워진 기도원이 하루 1만원의 돈을 내지
않으면, 대성전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인가?

솔직히 세상적인 잣대로 보아도 선교센터 숙박 시설 같은 곳에서,
하루 1만원씩 받는다면 아마 오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찜질방으로 갈 것 같다.

왜 그 따위 이층 침대로 위험천만한 기도원 같은 시설에서
1만원씩 내면서 잠을 잘까?

실제로 예전에 본인이 가보았던 찜질방에 침대 크기는, 기도원침대
크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편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기도원의 방값이 훨씬 비싸니 도대체 무슨
작태인가?

또 3,000원 하는 식사도 낮에는 닭볶음?과 김치와 상추무침의
3찬과 국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이 적은 저녁에는 콩과 오징어 젓갈과 무를 섞은 것,
그리고 김치와 국이 전부였다.

최소한 절반 이상은 남을 만큼의 식사를 보면서 공사장의 "함바식당"
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곳곳에서 철저한 상업적목적을 드러내는 기도원시설과,
운영자들의 몸과 마음자세에서 엿보이는 불친절과 권위적태도.

오ㅈ수 실장은 내가 기도원을 떠날 때까지 맨처음 경찰과 들렸던
"금촌메디안"병원의 초진챠트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병원은 서울에선 보험처리가 되는 초음파검사를 요구했고,
난 결국 7일짜리 처방전만 받아왔다.

왜냐면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병원에서 CT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사실 다쳤다는 초진 검사의 결과로 처방전을 받았으니, 더 큰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오ㅈ수 대리에게 설명 했지만, 그는 금촌메디안
병원의 초진챠트가 아니면 보험회사에서 받지를 않는다는 거의
어거지 수준의 주장을 계속 고집했다.

결국 기도원버스를 타고 떠나 올때까지 한결 같은 "오ㅈ수
대리"의 떼거지 수준의 갑질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방도 내가 "팔이 아파 가방을 끌 수 없으니 기도원버스 타는
곳 까지 옮겨달라"고 요구하자 세명이 나와서 옮겨준다.

참 기분이 더럽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주님은 떠나신 듯 상술과 불친절이 판을 치는
오산리최자실 기념 금식기도원.

최자실 목사님 생전에도 돈을 밝혔던 오산리기도원이 지금부터
언제까지 더 지탱할 수 있을까?

아마 머지않은 장래에 어디론가 매각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그럴 경우 그 막대한 토지및 시설 매각 자금은 누구 주머니에
들어갈까?

그리고 노인들의 밥값과 국수값까지 모아져서 지어졌던 기도원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기도원이 팔리면 성도들에 헌금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탄식을 할까?

내가 죽는 날까지 오산리기도원의 불법적인 매각은 진행될 수 없도록,
언론과 방송을 통해 지켜봐야 할 책임이 있을 것 같다.

한심하고 위험한 2층 침대 구조로 하루 1만원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국민들의 악행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성전에선 공짜로
밤을 지새우지 못하게 하는 기도원법"

이 철저한 상술과 불친절과 무성의에 찌들은 현재의 오산리기도원과,
그 직원들은, 함께 바뀌어야 할 공동운명체는 아닐까?

기도원을 떠날 때 오ㅈ수 대리 라는 사람은 5장에 달하는
보험금청구서를 내게 안겨 주었다.

그런대 쳐다만 보아도 골치가 아픈 이 보험금청구서를 왜 내가
혼자서 작성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산리기도원의 어설픈 시설들은 내 육체를 다치게하고, 또 세상
사람들보다 악해 보이는 "오ㅈ수대리"는 내 마음까지 다치게 한다.

내 나이가 내일모레 환갑이고, 오른쪽 팔을 전혀 못쓰는
2급 장애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2층 침대에 오르다가 떨어졌다.
현재도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아프고, 또 앞으로 다른 곳도 아플까봐
걱정스럽다.

그러나 오ㅈ수 대리는 "아까는 넘어 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 말이 바뀌느냐?며 심문하듯 다그친다.

솔직히 정신 없이 사다리에서 떨어 졌을 때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는지,
바닥에서 엉덩이가 몇cm가 떨어 졌는지 난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오ㅈ수 대리는 보험회사 직원도 하지 않을 질문을 꼬치꼬치
캐묻고, 시비를 걸듯 따진다.

또 오ㅈ수 대리는 보험회사 직원을 연결시켜 달라고 해도 "안됀다"며
보험금청구서를 디민다.

난 결국 잘못으로 뭉쳐진 기도원운영을 바로 잡기 위한 글을 작성키
위해, 아픈 몸과 불편한 한쪽 팔로 장시간 글을 쓰는 고생까지 덤으로
겪어야 했다.

오ㅈ수 대리 라는 오산리기도원 직원이 개인적으로 이모저모 사람을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아! 오랜세월 주님과 멀리 있었던 내 자신을 회개시키려 갔던
오산리기도원은 오히려 또 하나에 커다란 짐으로 나를 눌러온다.

뿐만아니라 서울로 돌아온 6월15일이 금요일인데, 국립의료원은
정형외과 분야는 환자들로 꽉 차있어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로 이어져 월요일날 교수를 만나기로 예약 했다.

현재 어릴 때 병을 밟아 신경이 끊어진 왼쪽 발가락부터 찌릿찌릿
나를 놀라게 하며 순간순간 아프다.

또 오토바이 사고시 없어진 무릎 관절을 이어 붙인 조형물이 들어있는

오른쪽 무릎도 통증이 심하다.

가장 문제는 침대에서 떨어질 때 왼손으로 계단을 잡음으로 인해
인대가 늘어났는지, 목,팔,허리,엉덩이까지 갑자기 심하게 아프다.

마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를
정도다.

어찌보면 "2층 침대로 올라가다 떨어진 작은 일로 무얼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을 하실 분도 있겠다.

그러나 쓰러져가는 초가집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

또 사실 이런 일이 개인간에 벌어졌다면 어느 정도 이해도 하며,
또 개인적으로는 손해도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상대는 보험회사다.
그들은 최대한 치료비를 적게 주려는 전문적인 손해전문 집단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상대 할때는 서로 양보하고 때론 손해를
감수하는 인간적인 정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행여 닥쳐올 합병증이나, 더욱 큰 통증을 수반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치료비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왜냐면 합의를 본 후에, 오산리 2층 침대에서 떨어진 일을 빌미로
다리를 수술한다거나, 당시에 충격이 원인이 되어 또 다른 통증이
장기간 발생한다면, 이 고통은 고스란이 내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ㅈ수 대리는 자신의 돈으로 내 치료비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건만, 마치 판검사처럼 나를 불쾌하게 다구치니 어이가 없다.

더구나 손해사정인이나 보험회사직원이 작성해야 할 5장의
보험금 청구서를 피해자에게 직접 작성해 오라니...

그러면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피해자가 혼자서 청구서를 작성한다는
것인가?

그런대 가장 문제는 내가 제대로 보험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 외에도,
나에게는 최우선적으로 위로하는 자세를 갖어야 정상일 것이다.

이건 불신자들도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건만, 오산리기도원의
오ㅈ수 대리는 도무지 기본적인 자세가 "악하다"고 밖에는 표현 할
수가 없는 태도를 보였다.

난 벌써 6월13일 저녁11시20분 경에 침대에 오르다 떨어진 이후로,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우선적으로 오ㅈ수 대리는 물론 다른 근무자들까지
포함하여,일단 방문자에게 무신경하며 권위적인 태도를 드러내니
절대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다.

유사시 다른 성도들에게 까지 같은 행동이 이어질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원래부터 어떤 일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오산리 기도원에 위험한 2층 침대는 당연히 철거
시켜야 할 것 같다.

더구나 선교센터 천장은 단칸 침대로 쓴다해도 결코 높은 상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1층의 성도들도 불편하고, 2층 성도도 불편한 현 구조는
편의보다는 수익만을 생각한 구조라 하겠다.

아울러 이런 구조는 몇십년 전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어도, 이제는
2층은 걷어내야 할 시대가 아닐까?

더구나 다른 성도들도 이미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지금, 계속 2층 침대를 고집한다면, 기도원측의 행태는
정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라보인다.

아울러 좀더 성경적으로 지적한다면, 현재의 사랑의집과 선교센터는
외국성도나 장애인과 노약자들에게 내주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은혜를 받고자하는 성도들은 재벌은 물론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성전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함께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머리위에 재를 뿌리고 굵은 베옷을 입고 스스로를
괴롭게 하며 금식을 했건만, 한국은 부자와 가난한자들을 잠자리부터
우선시 차별하며 집회를 갖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주님을 기쁘게
하는 방식일까?

그런대 이제는 한술 더떠 가난한 자들에겐 대성전에선 밤을 세워
기도할 방법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렸다.

결국 가난한 자는 기도원에 출입하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와 같이 돈에 눈이 어두운 번영신학의 추종자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태로 그들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개인이 망해보면 하루 만원에 숙박비도 큰 부담이 됄 수있다.

아니 망하지 않아도 중산층 이하에겐 하루 1만원에 숙박비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마디로 오산리기도원은 점점 도둑의 굴혈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도원은 금전적인 부분부터 확실하게 회개하라!

숙박비를 받으려면 헌금을 강요하지 말던지, 이와 같이 주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무조건 돈이라면 챙기는 것이 영적강도의 습성아닌가?

원로목사가 퇴직하면서 받은 200억이 넘는 퇴직금은 성도들에 피와
땀이건만..

담임목사에겐 거액의 퇴직금과 그 아들을 포함한 가족에게도
천문학적인 돈을 횡령 당했다.

그러나 기도에 갈급한 기도원 성도들에겐 불편한 침대에 최소
1만원씩 받아내는 순복음교회는 과연 주님이 주인인 집단인가?

솔직히 내 눈에는 여의도순복음 교회는 사교집단과 크게 달라
보이질 않는다.

특히 그런 목사를 퇴출 시키지 않는 교인들에 책임도 주님 앞에선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집단이 세운 오산리기도원은 과연 그들답게 장애2급의 장애인이
다친 것쯤은 우습게 알고 '행정실 대리"라는 명함은 물론 휴대폰번호
조차 불러 주질 않는다.

예전에 조용기목사의 교회성장론에 기초하면 "빛을 져서 교회를
건축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자 지혜롭지 못한 한국의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과도한 건축
빛에 짖눌려 복음 전파는 커녕 아까운 세월을 빛 갚는일에
보내야 했었다.

이와 같이 목사 한사람에 잘못됀 가르침은 수많은 목사들과 장로,
권사들까지 희생시켰다.

그럼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용기목사는 잘못됀 교회 성장론을
주장한다"는 올바른 지적을 하는 목사를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세계가 낳은 주의 종"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러나 내 눈에는 주님을 이용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챙긴 삯군에
대명사로 보인다.

아니 자신은 물론 자식들의 부까지 챙겨줘 결국 자식들로 하여금
사무엘의 두 아들보다 더욱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든 목사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한국목사들과 신학생들이 여전히 롤 모델로 조용기목사를
꼽고 있다.

더구나 교인수가 많아지면 다른 목사들도 "이단"이라고 지적하다가,
오히려 "정상"으로 받아들이니 이것도 한국 기독교의 큰 문제다.

또 교단도 슬그머니 문제점을 덮어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교단으로 끌어들여 교세를 넓히는 것에 이용하려 한다.

이렇게 돼면 바른 지적과 건전한 신학은 오고 간데가 없고, 오직
머릿수로 옳고 그름에 분별이 오락가락 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광야의 소리 일때는 비교적 바른 복음을 전파하나,
실제로 대중적 인기를 추구할 때, 그 때부터 복음에 변질이 급속도로
일어난 것은 역사적 펙트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진정한 복음은 예수님 승천후 몇세기가
지난 후에는 이 땅에서 맥이 끊기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기독교는 처음을 회복하기 위한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을 쳤으나, 오히려 현재는 번영신학과 은사의 변질, 교회의
기업화 등등으로 진리와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사건에서도 드러나 듯, 목사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장로라는 사람들 조차 분별력을 잃어버린다.

특히 병고침이나 무슨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문만 나면 "똥도 됀장"으로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내에 부지기 수다.

순복음교회도 "나무는 열매로 보고 안다"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너무도 명백한 담임목사에 잘못에도 상당수 교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제자들이 지어야 할 십자가를 외면한체,
현세적인 "복" 만을 강조하는 목사에 말로가 당연하지 않은가?

솔직히 순복음목사들에게 "각 개인이 짊어질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물으면 어떤 대답들을 할까? 궁금하다.

심지어 순복음교인으로 열심히 헌금을 냈던 내 자신도 아주 오래 전에
조용기목사가 전하는 "십자가는 주님이 졌기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만
따먹으면 된다" 는 번영신학이 너무도 좋았었다.

그래서 주님이 채찍에 맞았기에 나음을 얻었고,"하면된다! 해보자"
라는 자기최면에도 빠졌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에게 징계도 받아야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질병과 가난도 사용한다

하지만 폭 넓은 영적판단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게 막드는 번영신학.

믿음에 조상인 아브라함이 부자였으므로, 우리도 당연히 아브라함의
복인 물질의 부요가 넘쳐야 좋은 신앙인 이라는 달콤한 속삭임

그래서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것이란다.
그러면 우리도 "열국의 아비가 된다"라는 것인가?
또 열왕의 조상도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브라함에게 "아비 친척 본토를 떠나면 너로 큰민족을 이루어주겠다"
고 약속 했으므로 "당신도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물질적인 부자여야
한다" 가르침은 예수님이나 초대교회 때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주님은 왜 물질적 부자가 아니어서,
제자들이 시장하여 남의 밭의 이삭까지 안식일에 잘라먹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런 가르침은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

더구나 고아와 과부, 그리고 말년에 부름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와 같이 비성경적인 해석인 "믿으면 아브라함 같이 부자가 된다"라는
가르침에 봉사도, 헌금도 열정적이요, 아니 지나칠 정도요,
가히 광신적이라 할 정도로 열심으로 한다.

내가 예전에 오산리기도원의 "승리로"를 산책할 때의 두 여인에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 친구 왈 "야! 예수 잘 믿으면 때 부자 돼"
그들의 말에 머리가 띵! 충격이었다.
또 안타까웠다!

그 이후 어느 책에서 읽었던 호스피스의 체험담을 보았다.

한 미용사 여성이 말기 암으로 죽어가면서 발작적이며
주기적으로 벌떡 일어나 "할수 있다! 하면 된다"를 외치다 몇일이
지나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일화.

도대체 그녀는 죽어가면서 무엇을 그토록 "할수 있다!"고
믿고 싶었을까?

또 죽어가면서도 거짓 소망에 연결된 신기루 같은 희망에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
결국 죽음이라는 시간의 끝까지 거짓가르침을 이루려고 몸부림
쳤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오늘날 상당수 교회 목회자가 성공의길, 부자되는 길을 가르킨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들에게 훨씬 많은 경고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강단에서는 부자에대한 경고는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인기있는 부흥사들은 바로 사람들에 필요를 채우는 설교다.

그러나 성경에선 원래 참진리는 따르는자도 적고 험한길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거짓선지자의 확실한
표식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왜냐면 진정한 복음은 "입에는 달지만 뱃 속에 들어가면 쓰기
때문이다"

그만큼 십자가를 지는 것 부터 시작하여,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지식은 끝까지 달콤한 가르침이 아니다.
내 뱃속에서 실제적인 자양분으로 변해야 할 "성화"는 결코 육적으론
달콤하지 않다는 가르침을 주고있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은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면 "복받으라'는 명목아래 십일조는 철저하게 하라고 가르치며,
또 십일조도 월급에 십일조, 불로소득에 십일조, 회사 전체매출에
십일조 등등 아주 세분하여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는가?"에 대한
가르침은 세세하고 치밀하게, 아니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분명히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기초한 십일조를 내야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신약에 기초한 "믿음에 의"로 주님에 죽으심을 통해 다시 살아난
새 생명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에 것이건만 "10분에 1은 주님 것.
10분에 9는 본인들 것"이라는 성경에 있지도 않은 십일조 법을
멋대로 주장하며 성도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그리고는 채소의 10분에 1, 즉 콩나물에 10분에 1까지도 철저히
구분해서 내라고 가르친다.

지금 기독교 목사들이 주장 하는 것들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주장과 행동을 너무나 쏙 빼닮아 있다.

또 성경을 살펴보면 현 기독교는 주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상당수
골라서 한다.

헌금만 해도 50분~1시간 가량의 예배시간에 헌금낸 사람의 이름을
한명씩 부른다.

결국 헌금통 돌리는 시간부터, 사람 이름을 개별적으로 부르는시간,
또 축복기도까지 거의 10분 가량을 잡아먹는 교회가 수두룩하다.

말씀을 깨닫게 해야 할 귀한 시간을 마치 천주교의 예식을 치르듯,
장로들의 대표기도와 주기도문 선포등을 포함해 온갖 예식에
소모시킨다.

가장 문제는 수 많은 사람들이 헌금이 없어서 교회를 가지 못한다.

특히나 체면을 중요시 하는 한국인들은 헌금시간에 파란 지폐나
노란지폐를 내며, 자기 과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결국 돈을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습성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역예배등등의 모임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참석하질 않는다.

이 처럼 돈으로 복음 선포에 기회를 날려버리는 한국교회에 죄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실명으로 헌금 그래프를 공개하는 교회도 있으니, 돈을
한푼이라도 더 걷으려는 기도교 목사들의 행태,는 때론 엽기적으로
보이기 까지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십자가를 지거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성령충만을
지속하는, 기독교에 핵심 방법등에 대해서는 목사 스스로가 잘 알지
못하며, 결국 제대로 가르칠 능력도 찿아 볼 수가 없다.

허기사 강사 목사 스스로가 성령충만에 정의나 지속방법 등을 알 수가
없는 관계로, 본인들 삶 자체가 성령충만과는 거리가 먼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으로 가장 중요한 낙타 크기만한
사랑의 계명(가르침)은 통째로 삼킨다.

즉 통째로 삼켜지지도 않는 낙타를 "통째로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은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낙타야 말로 토막을 내고 잘게 잘라서, 구워먹을 부위와, 끓여
먹을 부위, 또 어린이들에게 알맞는 부위등등 또 요리법에 맞게
부위를 선택하고 잘 끓여야 소화를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유컨대 낙타만한 크기의 공의와 정의와 긍휼과 사랑,
믿음, 더불어 믿음안에서 소망(바라봄) 등등의 가르침은 대충
가르치거나 잘못 가르킨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조용기목사의 "바라봄의법칙" 이다.
우선 조용기 목사의 바라봄은 시작부터 비뚤어져 있다.

성경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을 임의대로 바라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바라볼 대상을 주님이 먼저 제시하신다.

조용기목사가 자주 인용하는 아브라함의 경우 부터가 그렇다.

하나님이 자식 한명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저 하늘에 별들처럼
네 자손이 셀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었다.

결국 그 믿음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이 제물을 준비하셨다"
라며,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의 행동으로 확연히 증명됐다.

그는 제물이 없고, 설령 이삭이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날 것"
이라 굳게 믿었기에 칼로 독자를 내리친다.

왜냐면 하나님은 이삭만 진정한 후손이고, 그 자식을 통해서만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들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삭은 반드시 산다"

는 굳건한 믿음이 아브라함 행동의 원천이었다.

이처럼 믿음을 동반한 소망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행위는 결국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믿을을 통한 바라봄의 법칙이다.

이 법칙의 주체는 시작도 끝도 오직 하나님 한분이 하시는 일을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조용기목사의 바라봄의 법칙은 그것이 아니다.
마치 "하나님이 선악과를 바라보지도 말라고 하셨냐?"며
은연 중에 말씀을 변질 시키는 마귀처럼 가르친다.

바로 인간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고 믿으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자동차는 모델에 색상까지 바라보라!"
는 식의 가르침이다.

얼마나 달콤한가?
자신의 소원과 육적인 욕망이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 볼때
내것이 돼고 채워진다니?
정말 절대적 복음같이 들린다.

어찌 그리도 마귀와 같은 수법으로 말씀의 일부분을 변질시켜서
눈과 귀를 속일까?

마귀가 선악과를 "하나님이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됄까봐 못 먹게 했다"
라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그 순간 이브가 선악과를 바라보니 "보암직, 먹음직" 즉
하나님처럼 됄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조용기목사에 바라봄에 법칙도 똑같다.
분명히 처음에는 바라본다고 내것이 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에 간증과 이처럼 큰 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거짓을 말할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바라봄의 법칙"만 사용하면 엄청난 부와,권력과,사회적 출세도
"단숨에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됀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할수 있다! 하면 됀다!"라는 거짓 주문을 추가 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됀다"
이며,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으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할 수 있다" 등일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입성시에 여호수아와 갈렙의 예를 들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를 외치라고 가르친다.

또 절대 의심하면 "가나안에 못들어 간다"고 한다.

사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 하기전 수 많은 기적을 체험했고,
모세라는 하나님을 대면한 선지자가 살아 있음에도.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스스로 메뚜기 같다"라고 말하며 우니 이들의 죄는 크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까지도 변화시키셨다.
그래서 복음 아닌가?.

약하고 무식한 제자들을 죽음도 두려워 않고 십자가에 거꾸로
죽기까지 충성스런 사도로 만드신 예수.

그래서 예수는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구세주일 것이다.

아울러 많은 목사는 각종 헌금과 봉사로 하나님에 마음을 사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경은 재물로 "하나님에 마음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킨다.

다만 그 마음을 받으시는 분인데 "자기에 소원과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뇌물성 헌금은 이미 헌금적인 의미가 없는 쓰레기로 변한다"

성경은 주님께서 그 따위 헌금을 가져오는 자들에게 심지어 "내가
도적의 아비냐?"라고 반문하신다.

그런 헌금은 오직 거짓 선지자들이 "축복에 축복을, 더 많이 헌금을
계속 가져와서 더 많이 축복 받으라"고 거짓으로 부추킬 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부자청년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네 재산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가르치셨다.

요즘 목사들은 교회에 헌금하고 목사말 잘 들어라고 가르친다.
목사말은 마치 유사시 교통순경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듯이 가르친다.

그래서 주의제자를 만들기는 커녕 철저한 목사에 추종자를 만든다.
그리고 목사는 자신이 교회를 옮길 때는 그 동안의 인간적인 정마저
내 팽겨치기 일쑤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인 정을 이용하여 목사 자신이 새로 부임하는
교회로 추종자들을 이끈다.
결국 교인수 불리기에 동원당하는 꼴이다.

이 글을 보는 순복음교회 교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순복음교회로 나온 것이 베드로에 설교를 듣고 "어찌할 꼬?"
라며 반문하던 유대인처럼 당신들의 죄가 두려워서 였던가?

또 혹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당신의 죄성이라는 강한
찔림이었던가?

아니면 조용기 목사의 세치 혀에 넘어가 성경을 오해하여 예수를
믿으면 몸도 튼튼, 돈도 든든, 명예도 쑥쑥" 이라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라는 비성경적인 거짓에 속은 결과인가?

참으로 순복음교인 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는 거짓목자들 투성이다.
그들은 큰 교회를 세워 자신의 종교적 명예를 세우려고 혈안이다.

그러나 가장큰 폐단은 거짓목자들이 성경을 엉터리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특히나 병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목사에 말은 무조건 맹신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등식에 스스로 빠진 결과이다.

하지만 주님도 귀신을 쫓아 냈을 때 "바알세불의 힘"을 빌렸다는
모함을 받고서 지적하신 것이 있다.

즉 너희 아들들도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럼 그것도 마귀의 힘이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 심판관이 될 것 이라고 말씀 하셨다.

또 주께서 70인제자를 파송했을 때 그들은 병고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부여 받았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결국 주님을 팔아 먹었다.

그 뿐인가?
주님이 잡히시던 저녁에 모든 제자들은 전부 도망을 갔고, 심지어
옷을 벚은 채로 도망간 제자들도 있었다.

아울러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주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마셔야
영생을 한다"는 어려운 말씀을 하시자 12제자를 제외하곤 모두 떠났다.

그 때 주님의 물음이 12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라며 수제자 다운 대답을 했다.

그렇다.
예수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이며,생명이기에 따르려고
애쓰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신앙촌의 박태선 장로는 심지어 자신에
차에 치여 "교통사고로 죽은사람을 그 자리에서 살렸다" 라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와 같은 이적을 통해 수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끈
거짓선지자들이 많다.

그러면 다가올 말세는 어떤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날까?

성경은 우상이 말을 하고,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일들이
거짓의 영들에 의해 벌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도 미혹으로 이끈다"라며 경계를
한다.

오래전 내가 직접 겪고 크게 실망한 일이다.

오산리 기도원에 김상x 목사님이 계셨다.
그분은 인상적인 하얀 머리에 기도원에서 가장 연로한 목사님 이셨다.

또한 그 분은 비교적 여의도순복음의 메시지 영향을 덜 받은 분
같았다.

어느날 예배 후에 축사를 선포하신다며 "누구 어떤 사람의 병이 지금
이 시간에 깨끗히 낳았다"라고 여러 질병의 묶임에서 해방을 선포했다.

그런대 갑자기 "오래 전에 오토바이로 사고로 오른쪽 팔을 전혀 못쓰는
형제가 24시간 통증에 시달렸으나 이 시간 고침을 받았다"고 외치셨다.

옆에 있던 나와 친한 형제가 "저것은 나를 가르키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주었다.

한 순간 나는 놀랐으나 "아멘"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도 "오토바이 사고 등등" 하는
목사님 축사에 "아멘"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나 그 당시 지하에 "할렐루야" 성전이거나, 더 작은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였기에 난 주위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목사님의 축사에 해당되는 사람은 안보였고, 저것은 분명히
나에 대한 축사였는데 내 팔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난 내심 크게 낙망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저들의 병고침 축사가 거짓" 이라고
주께서 알려 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날에도 "병이 낳으면 좋고, 안 낳으면 그만" 이라는,
무책임한 생각의 목회자들이 꺼리낌 없이 강단에서 축사를 남발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강사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병과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은,
강단위에서 선포됀 축사 후에 자신에게 아무런 일이 생겨나지 않으면
상당히 낙심을 할 것이 뻔하다.

더 나아가 "믿음에 축사는 거짓" 이라는 불신으로 말미암아 결국
신앙을 접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여호와에 이름으로 예언을 한 후에,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언자를 돌로 쳐 죽이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또 다른 폐단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축사로 인해서 병이 낳지 않았을
경우 "기도받는 사람의 믿음 탓"을 하는게 옛날부터 전통이다.

그러나 성경은 귀신들린 자를 쫓지 못하는 제자들외에는, 예수님이
기도 받는자의 믿음을 탓하며 병과 귀신을 쫓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더불어 귀신들린 아들을 쫓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기도와금식"으로
이런 류를 쫓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럼에도 축사를 남발하고 남의 탓을 하는 목사의 행동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우상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이적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어떻게 소유할까?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진리의 말씀에서 넘어가지 않고,
그 안에 거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방법은 말씀을 항상 상고하며, 어떤 해석이 옳은가?를
스스로 분별하려고 노력하며, 또 진리의 갈급함을 주님께 직접
부르짖는 자세이리라.

하지만 사람들은 병들고 사업이 망했을 때만 부르짖을 뿐, 오직 진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의에 주림으로" 인한 외침은 멀리하고 있다.

그런대 더 큰 문제는 사람들에 이런 자세를 정상으로 여기는
목회자들이다.

실제로 유명 목회자들 스스로가 "등 따듯하고 배 부르면 기도
안하는게 당연하다"고 가르치니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라며 책망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자녀들의 대합시험 합격을 비는 부모들의 간절함 만큼도
진리 자체에 대해 목말라 하지 않는다.
아니! 이 경우 오히려 "적당히 믿으라!"는 핀잔을 받을 정도다!

그저 하나님을 돈,재산,지위나 지켜주는 수호신 정도로 여기고,
열심과 복채를 받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설명 하자면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만이 어떤 미혹에도 견딜 수 있는 방법이리라.

주님의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지적은 결국 "말세에는
거짓 가르침이 온 세상을 덮을 것이다"는 경고의 말씀과 같은 것이리라.

좀더 자세하게 밝히자면 거짓가르침은 거짓 믿음, 거짓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내 자신도 아직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일체에 삶의 비결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에게 내 자신에 눈멀음과 귀먹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
중이다.

그런대 상당수 교인들은 자신들이 장님이요 귀머거리라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큰 이유 중 하나는 "회칠을 해주는 거짓
목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현실이다.

죽은자에게 생명이 있다는 거짓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거짓이리라!

난 몇년 전부터는 진정한 목자를 찿으려고 유투브를 뒤져 보았다.

하지만 "찿았다" 싶어서 계속 그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결국 아니었다.

심지어는 율법과 은혜도 구별 못하고, "믿음과 행함의 하나 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짓 목사가 수두룩 했다.

그런대 따져보면 기독교는 바울처럼 "사람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그리스도 에게서 직접 보냄을 받은" 목자가 절실하다.

그러나 설령 시작은 그리스도로 첫 발을 떼었어도, 결국 신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신학생은 비슷한 목표를 갖고 신학교를 졸업한다.

결과적으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목자들이, 공부를 해서
그리스도를 전하려하는 "어림 없는 짓들에 빠져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부목사가 교회 부임 후 첫 설교에 "교회에서
도망쳐라! 빨리, 멀리 교회에서 도망치라!"는 식의 설교를 쏟아내는
장면이 현재 유투브에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나 목사는 냉정하게 따지자면 공부를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우선적으로 주님에게서 직접 보내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보냄의 증거는 무엇일까?
당연히 정확한 성경해석이며, 오직 그것만이 유일하게 주님께 보냄을
받은 증거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믿음에 도를 가장 정확하게, 혼잡스럽지 않게, 쉽게, 능력으로 실제
적용을 하게 가르치는 일 외엔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사실 귀신 쫓음과 신유, 그외에 온갖 은사도 전하는 자들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리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귀신 쫓음과 신유는 실제적으로 복음을 더욱 잘 받아들이게
하는 역활도 한다.

실제로 귀신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인격체는 처음부터 복음에 뿌리가
제대로 내리기가 불가능하다.

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육체의 병도 정상적인 복음의 성장을
크게 방해하는 통상적인 요소일 수 있다.

더불어 다른 은사들도 영적생활에 성장을 돕기 위한 주님의 배려다.

하지만 진짜 중심이요, 뼈대는 정확한 성경 해석 능력이다.

아울러 이런 명확한 성경의 이해와 전달 능력이야 말로, 성령충만의
능력 중 가장 핵심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듯한
기초적 복음"이 주류요 대세라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능력있는 부흥사라는 분들에 설교를 들어 보아도 "주님은 살아
계시다" "십자가에서 죄 용서 받았다" "성경 열심히 보고 기도해라"
"십일조및 각종 헌물을 잘 내라" "환란 날에 부르짖어라""성공의법칙"
"성경적 부자돼는 법""성령충만" 대충 이정도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 으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를 수 없다.
특히 초기때 부터 성경을 오해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실제적
"성령충만"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성령충만"에 대한 오해다.
우선 "성령충만"을 일상생활에서 건강하고 부자되며, 꼬리가 아닌
머리되는 방법으로 소개한다.

또 성령충만을 인통,신통,물통의 통로로 인생 앞날에 대로를 열어주는
지름길로 소개하는 어이없는 가르침이 한국교회를 휩쓸다시피 한다.

지난날 기도원 강사로 왔던 어느 여목사는 "본인이 성령충만을
받고서 집을 9채 소유하게 됐다"는 어이없는 설교를 한다.

실제로 조용기목사에 성경 가르침도 내용적으론 이런 사상으로
가득차 있다.

우선 창세기부터 "성령이 흑암위에 운행하면서 질서와 빛이 생겼다"며
"오늘날도 성령충만을 받으면 만사형통에 몸도튼튼 마음도 튼튼,
소원은 척척 이루어 진다"는 식이다.

그러나 질서와 빛은 인간의 육신적 소원과는 큰 관련이 없다.

만약 그 해석이 맞다면 이미 건강하고, 부자이며, 사회적 지도 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굳히 "성령충만"을 구할 필요가 없다.

왜냐? 이미 이루었는데 왜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는가? 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 조용기목사님이 한국교회에 기여한 점이 있다면, 성령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그 분의 인격을 인정하라"는 가르침이리라!

하지만 결국에는 성령충만의 목적을 지나치게 육신적인 수단을
만족시키는, 육체적자아 만족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점은
큰 잘못일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일이 더욱 어려워 보인다.

또 성령충만만 받으면 인생의 만족이 크게 채워질 것 같이, 그 밑에
목사들까지 그렇게 알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목사나 장로등이 마태복음 11장을 많이
인용했다..

바로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이다.

그러나 29절의 편히 쉬는 정확한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우를 범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바로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하며, 아울러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멍에)를 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빠트렸다.

이 조건을 충족했을 때 바로 "편히 쉼"이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십자가(멍에)를 향한 인간의 지나친 걱정을 덜어주시고자
30절에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십자가(멍에)는 작고 가볍다"는 부연 설명까지 친절하게 하셨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28절에 말씀만 믿으면 쉼을 얻는다며,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식의 엉뚱한 가르침을 퍼트렸다.

여의도의 조용기목사도 이런 가르침은 다를 바 없었고, 한술 더떠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으니, 우리는 그냥 그 혜택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며 한발 더 나간 엉터리 가르침을 알렸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고난은 필요 없다"라는
좌 우로 치우친 가르침을 퍼트려서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준 복음?을
구역장 등의 조직을 통해 널리 전함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외에도 많은 성경을 오해케하여 성도들에게서 순수한 어린아이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등, 조목사님의 성경오류의 독은 치명적이다.

아무튼 잘못 배운 성경 탓인지 여의도순복음 교인들의 불친절은
국내에선 명성이 자자한 편이다.

아울러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기도원에 오ㅈ수 대리의 행동은 믿지
않는 자들보다 훨씬 악해 보인다.

사람이 다쳤으면 우선 치료와 진료를 서둘러야 하건만, 마치 "왜?
우리책임 이냐?"는 식의 기도원 사람들의 한결 같은 행동들.

과연 순복음교인들은 달랐다.

난 이글을 올리려고 본 교회와 기도원의 게시판을 찿았으나, 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간혹 글을 올리는 방송사에 제보를 할까? 하다가 일단
장로님들의 반응이 보고싶어 이 글을 올려본다.

아울러 이 글은 여러 대형교회 게시판에, 담임목사와 국내외 기도원
관계자들이 볼 수 있도록 복사하여 올리려 한다.

여의도순복음 교회와 오산리기도원, 그리고 오ㅈ수 대리와 관계자외
여러분들에게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빕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비는 것은
서신을 보낼 때 서두에 인사형식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조용기목사 처럼 "영혼이 잘돼면(성령충만), 범사가 잘 돼고
(만사형통), 강건(건강과 장수)하다" 라는 믿음에 등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다중시설을 이용하다 누군가 다치면 일단 보험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오ㅈ수대리는 작성하기가 쉽지않은 5장의 보험금 청구서를 안겨주면서
개인에게 혼자서 작성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서는 전문적인 용어로 써 있습니다.

물론 개인이 작성을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친사람을 대하는 기도원측의 태도나 오ㅈ수 대리의
행동은 마음까지 다치게 하고 있지요.

지금이라도 손해사정인이나 보험회사 직원이 찿아와
저와 묻고 답하는 정상적인 과정의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요즘 같으면 조용기 목사님이니 이영훈 목사님에게 직접 찿아가 "번영신학으로
물든 당신들 교인의 행동을 보라!" 고 따지고 싶습니다.

물론 며칠안에 해결이 안돼면 본교회로 찿아가 두분 중 한분을 면담해야 겠지요.

정말 생각 같아선 오래 전에 기복신앙에 속아서 냈던 그 많은 헌금과 아까운
시간을 변상해 달라고 소송이라도 걸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대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두분 중 어느 분에게 찿아가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네요.

아시는 분 댓글 부탁드리며 아름다운 여의도순복음 교회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sos24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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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록 목사를 축복하셔서 세계적인 대 부흥사로 크게 쓰임 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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